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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얘들아, '코로나 추석'에는 안 와도 된다. (조선일보)

2020.09.09
햄릿의 고뇌만큼 무거운 질문을 추석이 던진다. 남들은 추석을 어떻게 돌파할 작정일까. 내가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과민한 건 아닐까. '아무튼, 주말'은 이런 의문에서 SM C&C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20~60대 남녀 3053명이 응답했다. 그렇게 뽑아낸 빅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이번 추석에는 이동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더 많았고, 고령자일수록 '정부의 이동 자제 권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코로나 추석'에는

안 와도 된다." (조선일보)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햄릿의 고뇌만큼 무거운 질문을 추석이 던진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추석에 장거리 이동 제한 조처가 필요합니다'(4만여명 지지)를 비롯해 '이동 벌초 및 추석 명절 모임을 금지해주세요''이번 추석 연휴는 제발 없애주시길 부탁드립니다'같은 상소(上疏)가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집단적 불안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10년간 명절 연휴 통행 실태'에 따르면 추석 연휴 수송 인원은 약 3600만명에 이른다. 승용차부터 버스와 철도, 항공과 해운까지 이용객을 모두 합친 수치다. 이 '민족 대이동'이 올해는 낭만적이기는커녕 무섭다. 밀접 접촉이 감염병의 전국적 확산을 부채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역설적이지만 흩어지는 것"(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라는 생존 수칙에도 어긋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최근 "추석에 이동 제한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는 말을 뱉었다가 논란이 일자 삼켜버렸다. 정부는 "이동 제한을 검토한 바 없다. 추석 연휴에 감염 위험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 중"이라고 선을 그었다. '추석 연휴 이동 제한'이 지금은 후순위지만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꺼낼 수 있는 카드다.


남들은 추석을 어떻게 돌파할 작정일까. 내가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과민한 건 아닐까. '아무튼, 주말'은 이런 의문에서 SM C&C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20~60대 남녀 3053명이 응답했다. 그렇게 뽑아낸 빅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이번 추석에는 이동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더 많았고, 고령자일수록 '정부의 이동 자제 권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이동하는지부터 물었다. 응답자 가운데 1433명(47%)은 '안 한다'고 했다. '한다'는 26%, '아직 결정 못 했다'는 27%로 조사됐다. 그런데 1716명(56%)은 '작년 추석엔 이동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추석에 명절을 보내기 위해 이동한 100명 중 절반이 넘는 54명은 올해 추석엔 이동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셈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5월과 8월에 연휴를 지나자마자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거리 두기가 격상되는 공포를 경험했다. 이번 추석 연휴는 닷새나 된다. 그래서 추석이 걱정되는지 묻자 '매우 그렇다'가 50%, '그런 편이다'가 38%였다. 국민 100명 중 88명은 '추석 연휴=코로나 확산'이라는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심란합니다. 저도 안 가고 싶은데 아직 아무 말씀이 없네요."(여성 A)

"열이 난다고 둘러대세요. 죽은 사람 챙기다 산 사람 죽어 나가요."(여성 B)

"저희는 시부모님이 먼저 ‘오지 말라’고 전화하셨어요.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래서 친정에도 '안 간다'고 했어요."(여성 C)


어느 온라인 맘카페에서 최근 이런 대화가 오갔다. 사실 코로나가 없어도 명절은 결혼한 여성 대부분에게 그동안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에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상처에 끼얹는 소금처럼 쓰린 속담이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이동 자제 권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렇다'가 62%로 으뜸이었다. '좀 더 상황을 보자'가 26%, '아니다'가 12%로 나타났다. '이동 자제 권고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남성(58%)보다 여성(64%)이 다소 높았다. 이 통계를 연령대별로 살피다 눈을 의심했다. 뜻밖에 60대에서 68%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틸리언 담당자는 "60대는 출퇴근하는 30~40대보다 집에서 뉴스를 더 많이 접하는 편"이라며 "코로나가 노약자에게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식도 염려하기 때문에 이동 자제에 더 호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추석 연휴에 이동을 반대하는 이유도 물었다. 이 문항은 복수 응답이 가능했다. 응답자들은 '이동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높다'(53%)를 1위로 꼽았다. '가족은 코로나 수그러들 때 만나도 된다'(40%) '피로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26%) '차례는 비대면(非對面)으로 할 수 있다'(13%) 순이었다.


학교나 직장도 아닌데 줌(zoom) 같은 화상 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차례를 지내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가 안 된다. 성균관 전례위원회 권선출 부위원장은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을 경우, 추석 차례를 건너뛰거나 불참해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았다"며 "가족이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한 자리에 모일 필요는 없다. '비대면 차례'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대전에 있는 큰집에서 차례를 지낼 경우 서울·부산·광주 등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이 노트북 같은 화면으로 실시간 참여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추석에 이동하지 않을 경우 장점이 뭔지도 물었다. 복수 응답이 가능했는데 '감염 위험이 줄어든다'(63%) 말고도 '명절 스트레스가 없다'(40%) '경제적으로 득이다'(33%) '노약자에게 더 안전하다'(31%) 등이 꼽혔다. '감염 위험이 줄어든다'는 응답은 60대 남성(73%)과 50대 여성(72%)에게서 두드러졌다. 반면 '명절 스트레스가 없다'는 응답은 20대 여성(50%)과 30대 여성(47%)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명절 스트레스에 좀 더 민감한 집단으로 추정된다.


최근 1년간 이혼 건수는 작년 10월에 9859건으로 가장 많았다. 9월에 추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갈등을 빚어온 부부가 명절 스트레스를 겪으며 갈라서는 일이 많다고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말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재택근무 등으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해진다. 병력과 동선을 다 아는 가족과 만남으로써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는 "추석을 계기로 가족이 만나는 것은 좋지만 이동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게 문제"라며 "그런 현실에서 비대면 차례와 비대면 성묘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민모(여·41)씨는 "비대면 차례는 같은 시간에 같은 생각으로 같은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몸은 떨어져 있어도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이번 추석은 '먼저 온 미래'같다"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어른들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번 추석엔 안 와도 된다'(46%)였다. '이번 추석은 건너뛰자'가 38%, '이번 추석은 우리가 가마'가 10%로 나타났다. '이번엔 안 와도 된다'와 '이번 추석은 건너뛰자'를 선택한 비율은 특히 50~60대에서 평균을 웃돌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올해는 전통에 구애받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느냐는 문제만 남아 있다.



조선일보 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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